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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바밤바
카미나리 덴키 x 지로 쿄카
최근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다. 귀신이 보인다던가 하는 괴담에 지나지 않았지만, 소문은 여기저기서 무성히 크기를 키워 오늘만 사이드킥에게 3번째다. 그만 좀 하라고 이어폰으로 귀를 세척시켜 준 뒤로는 그런 잡답은 나누지 않게 되었다. 귀신따위는 믿지 않는다. 죽으면 끝. 그 이후는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시간에 무뎌지는 일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헛된 희망에 매달릴 여유따위, 히어로에겐 없으니까.
“이어폰 잭..!”
“쉿! 잠복하고 있을 땐 히어로 네임으로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앗, 죄송해요 입에 붙어버려서...(소곤소곤)”
“전방에 인기척 발견. 인질을 우선 확보한다. 기억하지?”
“당연하죠!”
그래, 그럴 터였다.
“히어로다. 얌전히 투항해!!”
“인질 확보했습니다!”
“큭, 어떻게 여길..!”
잠입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개성 증강제의 거래. 장장 반년에 걸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잠복, 잠복.. 그리고 드디어의 작전투입이었다. 그렇게 작전대로 건물 안에 있던 놈들을 순조롭게 체포하던 중에
카미나리를 봤다.
분명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애였다.
잊었던 그날이 다시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겨우
겨우 잊었는데.
“지로. 오늘도 잠복이야~?”
“어.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
“싫어어. 기다릴래.”
“읏, 하여튼..”
“그치마안..”
어리광과 미련이 잔뜩 남아있는 말에 뒤를 돌아봤다. 불안감 또한 상냥하게 등 뒤를 쓰다듬고 있다. 갑자기 잡힌 의뢰에 겨우 만들었던 오프에도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오랜만의 데이트를 망쳤기에 가지말라는 카미나리에 말에도 발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속보입니다. 도쿄 내 대규모 테러로 인해’
“도쿄? 도쿄라면 카미나리가 있는 곳인데.”
‘...히어로 차지즈마가 사망했습니다.’
“이어폰 잭! 저 사람! 잡아야 해요..!!”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 카미나리가 죽었다. 장례식은 약소했고 그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바쁘지 않은 A반 몇 명과 그의 부모님 정도. 그렇게 잊혀졌다. 카미나리를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폐인처럼 지냈다. 그렇게 진한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져만 간다는 게 지독히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지, 카미나리답지 않은 수수한 끝이었다.
그런데 그 카미나리가 지금
다시 눈 앞에 나타났다.
수척해보이는 얼굴에 약간의 다크서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몇 달 사이에 뭔가 많이 바뀌어있었다. 분위기나 느낌이 내가 아는 카미나리가 아닌 것 같았다. 분명 시체까지 확인했었을텐데.
그래. 분명 죽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인지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눈 앞에 있는 게 가짜라 할지라도 이미 죽은 너가 돌아왔기를. 몇천 번이고 마음 속으로 바라왔다.
“카미나리!! 거기서!”
언뜻 보였을 뿐인 얼굴. 얼마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들 카미나리는 카미나리다. 멀리 보이는 금발을 따라 성급하게 발을 옮긴다. 작전은 거의 끝나가 사이드킥에게 나머지를 남겨두고 나왔다. 듣지 못했는 지 못 들은 채 하는 건지 카미나리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른 거야. 카미나리. 빠른 보폭으로 걷던 것은 곧 뛰어가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카미나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닿을 수 신기루라도 된다는 마냥. 분명 걸어가는 것 같은데도 보폭이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결국 복도 끝 꺾어지는 부분에서 놓쳐버렸다. 빠르게 눈으로 카미나리를 찾기도 전에 그대로 주변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10월 31일 12시.
할로윈의 밤.
바로 한치 앞도 구별하기 힘든 어둠에 사로잡혀 죽은 제 애인이나 찾는 가련한 생자들에게 신이 주는 마지막의 인사. 죽을만큼 괴롭던 죄책감이 벽을 더듬는다.
대대적인 정전이 도시를 집어삼켰다.
지로는 이윽고 확신했다.
“카미나리..!”
저멀리 방에 불이 들어왔다. 왠지 들어오라는 듯한 느낌이 뇌 속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거기로 가면 너가 있을까. 오랫동안 죄책감에 절여져 있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밝은 방에 내딛은 한 발자국에 단번에 주변이 바뀌었다. 맑은 하늘과 하늘색을 모조리 희석시킬 만큼 잔뜩 피어있는 구름들. 시선을 내리자
너가 있었다.
“안녕 아가씨.”
“카..미나리.”
“드디어 만났네.”
벙쪄있는 눈 한가득 너가 담겨 있었다. 몇 번이고 들었던, 몇 번이고 듣고 싶었던 목소리도 그대로.
“자, 시간이 없어.”
가까이 붙어 손을 잡는 카미나리에 그대로 끌려가 얼떨결에 유원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주변이 쉽게 바뀌어서 한낮은 벌써 깜깜한 색을 띄고 있었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놀이기구들과 여전히 바보같이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카미나리. 꿈인 게 분명했음에도 속을 수 밖에 없었다.
“거기 아가씨!!”
“으..응?”
“왜이리 울상이야. 데이트 재미없어~?”
“아니. 윽.. 아니... 너무 좋아서.”
눈동자에 새겨진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목소리가 눈물에 잠겨버렸다. 너를 잊으려 했던 내가 이렇게 과분할 정도로 행복한 꿈을 꿔도 되는 걸까. 카미나리.
“으아아! 잠깐만 잠깐만!!”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꽃다발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달래려는 듯한 상냥한 손길에 우울한 기분이 가셨다. 그리고 뭐야. 옷은 또 언제 정장으로 갈아입은 건데. 꽃다발을 내민 카미나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에.. 잠만 이거.
“좋아해. 지로.”
가..갑자기 고백이라니. 바보가!!!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꽃다발 위로 떨어졌다. 빨개진 얼굴을 황급히 가렸지만 금방 카미나리에 의해서 눈물 투성이인 얼굴이 드러났다.
“언제 이렇게 울보가 됐어.”
“흑..흐으.. .으...”
“대답 안 들려줄거야?”
“으으, 나도 좋아해..”
“응, 고마워. 아가씨.”
진짜.. 빨개진 얼굴을 둘러싼 반짝이는 밤과 눈부실만큼 아른거리는 감정들이 눈에 흘러넘쳤다. 좋아한다는 말로 가득 들어찬 마음까지 전부 너를 향하고 있었다.
“지로~”
“왜.”
“웨이~!”
“푸흡-!! 그게 뭐야ㅋㅋㅋㅋㅋㅋ”
“어?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나는데..!ㅋㅋ”
“윽.. 시끄러. 하여간..”
“그러니까~! 울지말고. 이렇게 웃는 모습 보니까 얼마나 좋아.”
“참나, 누가 울었다고 그래.”
“네네~ 아가씨. 눈 좀 감아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윽, 뭔데.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야?”
“우리 너무 신뢰가 없지 않아?ㅠ”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심 기대를 걸었다. 이렇게 카미나리와 대화하는 것도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졌기에 마음 한구석에 낯선 감정이 쭈그리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런 순간이었다.
“지로.”
어. 라고 말하려는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도 떠지지 않은 채 카미나리의 말만 이어 들리고 있었다. 입만 뻐끔거린 채 귀를 기울인다.
“나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 것 같더라. 미안해. 계속 남아있고 싶었는데. 아까 회전목마 하나라도 더 탈 걸 그랬나. 하하..”
안돼. 카미나리. 가지마. 안돼.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서로 바빠서 데이트도 별로 못했으니까 욕심부려봤어.”
“...”
“이제 벌써 갈 시간이래. 지로”
“사랑해.”
일어나보니 정전 사태는 해결되어 있었고 나는 기절한 채로 복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복도엔 방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고.
그 꿈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카미나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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