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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Young To.
랭담
바쿠고 카츠키 x 우라라카 오챠코
투둑, 툭.
그만 일어나라는 듯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느즈막히 눈을 뜬다. 무거운 몸을 힘겹게 끌어올리자, 침대 시트가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것들을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니 문득 시곗바늘이 눈에 들어왔다. 10월 31일, 오전 10시 37분. 일요일이기는 했으나, 본래 늦잠을 잘 자지 않는 그에게는 다소 생소한 시간이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공기가 몸 안쪽 구석구석 엉겨붙었다. 불쾌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찬 물을 몇 번 끼얹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이나마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괜히 화면만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가, 인터넷에도 한 번 들어가 보았다. 실시간 검색어와 최근 올라온 뉴스 기사들은 모두 같은 소식을 광고라도 하듯 요란하게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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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라카 오챠코는 죽었다.
갑작스럽게 상가에 나타난 빌런을 제압하던 중, 자신의 몸을 폭발시키는 개성을 가진 빌런이 한 일가족을 붙잡고 함께 자폭하려는 것을 저지하다가 빌런과 함께 죽어버렸다. 규모가 상당한 폭발이었지만, 두 사람 외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히어로과 학생의 숭고한 희생. 나이는 어렸지만 그 누구보다도 히어로다웠던 아이. 명예로운 죽음-
대중이 제멋대로 붙여둔 수식어들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구역질이 올라와 이내 그만두었다.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구석에 던져버리고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눕혔다. 쉬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아닌, 그냥 몸을 뉘인 채였다. 잠시나마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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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고 카츠키는 강했다. 웬만큼 숙련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를 물리적으로 넘어서기는 어려웠고, 그의 재능은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바쿠고는, 인간관계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서툴렀다.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간질거리는 감정은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고, 자신이 지금 품고 있는 감정의 종류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도 어렸다.
그럼에도 그는, 우라라카 오챠코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꿈을 몇 번이고 꾸었다. 그런 날이면 괜히 하루종일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행동했다. 너를 사랑해, 너를 좋아해. 바쿠고의 입에서는 장난으로라도 절대 나오지 않을 말들이었다. 아무리 발음해보려 해도 입술을 떼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누군가에게 받아 본 적도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품은 감정이 사랑이라고 정의내리지 못했다. 대신, 자신에게 익숙한 감정들로 그것을 치환해냈다.
분노, 불쾌함, 혐오.
그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채에 자신의 감정을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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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02분.
평소 게으름 피우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그였으나, 그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여전히 우라라카 오챠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우라라카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경우의 수. 우라라카와 빌런 간의 상성. 만약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이럴 거면 할로윈 파티는 왜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던 거야. 멍청이.
이러다가는 답이 없겠다 싶어, 그는 가벼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문득, 그의 부모가 수백 번은 주절댔던 그들의 연애담이 떠올랐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느니, 괜히 몸 이곳저곳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느니. 귀를 아무리 틀어막아도 끈질기게 따라오며 떠들었던 탓에 이제는 부모의 연애담을 모두 외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 자신의 행동과 감정이 그때 들은 것과 흡사하다는 것까지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 순간, 정말 참을 수 없는 토기가 올라와 그는 냉장고로 달려갔다.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문을 열어젖히고는 냉수를 꺼내 연거푸 들이켰다.
찬 것이 들어가니 토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띵한 느낌에 머리도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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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07분. 무섭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뚝 그치고 어둑한 구름 사이로 햇빛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창 밖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한 결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나가서 체력 단련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문을 열자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힘을 잔뜩 실어서는 말했다. 자신에게, 그리고 들리지 않을 누군가에게.
나는, 넘버 원 히어로가 될 남자다.
그는 앞으로도 유에이 고교 히어로과 학생으로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할 것이다.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무너지기에, 바쿠고 카츠키는 너무나도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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