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Near
바쿠고 카츠키 x 우라라카 오챠코
" 드디어 파티인 거죠? 너무 떨려요! "
부모님을 바라보며 반짝반짝거리는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들뜬 마녀 우라라카 오챠코였다.
사실 파티라기보다는 17세 이후 제 몫을 해내게 된 모든 마녀들을 축복하는 자리였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비단 마녀 뿐만이 아닌 무려 모든 종족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른 종족을 포함한 모두의 표정에 기대감이 비쳤다. 오챠코의 부모님 또한 그리하였으나 애써 오챠코를 진정시켰다.
파티 날, 오챠코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아끼고 아끼던 꽃잎을 닮은 분홍색 드레스에 순백의 구두, 부모님께서 선물해주신 귀걸이까지 착용하고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누가 보면 마녀답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친구들은 대부분 밤하늘을 닮은 듯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지만, 오챠코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저 마녀라고 해서 모두 칙칙하고 어두운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작고도 굳은 포부를 가지고 그녀는 파티장으로 들어섰다.
파티장은 오챠코의 상상 이상으로 호화로웠다. 파티장을 수놓은 조명과 맛있는 음식들은 고사하고 각기 다른 차림의 여러 종족들까지. 당당하게 입장한 오챠코였지만, 분위기에 조금 압도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당찬 그녀는 편하게 친구들을 포함하여 모두와 신나게 대화를 나누고, 춤도 추며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옷차림에 대해서 아니꼽게 보일까 싶은 걱정과 다르게 모두의 반응은 호의적이었기에 뿌듯했던 그녀는 잠시 왁자지끌한 파티장을 나와 잠시 바람을 쐬며, 막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내가 진짜 마녀가 되는구나... 이러니까 시간이 참 빠른,"
"야."
"으헉, 누, 누구세요?!"
혼잣말을 하는 도중 날아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속내를 들켜 부끄러운 것도 잊고 화들짝 놀라 상대를 살피는 오챠코였다. 달빛에 비치는 백금발의 머리칼과 루비처럼 붉은 눈의, 복슬복슬해 보이는 귀와 꼬리를 가진 자신의 또래 쯤 될 것 같은 소년. 그 모습에 살짝 감탄하기도 잠시, 사납게 일그러지는 소년의 표정에 제법 당황한 그녀는 재빨리 사과를 하고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가려는 차에, 자신의 팔을 붙드는 그에 의해 멈춰섰다.
"우라라카 오챠코. 맞냐."
"그, 그런데요...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시는지..?"
그렇다는 말에 그의 표정이 잠시 밝아지는 듯 했으나, 이내 누구냐는 질문에 조금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 되며 얼굴은 다시 구겨졌다.
"기억이 안 나나 보지?"
날카로움은 덜해졌지만 묘하게 갈라지는 목소리에 서러움이 묻어나는 듯 했다. 영문을 모르는 오챠코였지만, 괜스레 미안함이 들어 소년과 말을 좀 더 섞어보려는 그녀였다.
"저, 혹시 어디서 만났는지라도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혹시 모르잖아요, 금방 기억이 날 지..!"
그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살짝 흉터가 진 그의 하얀 목을 바라보며 그녀는 어리둥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목? 목이랑 관련이 있다고? 아무 것도 생각이지 않는 그녀였기에, 때마침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다고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니냐며 사과하고는 자리를 떴다.
파티를 마지막까지 즐기고, 아무래도 소년이 신경 쓰였던 오챠코는 친구들에게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평소에도 느긋한 감이 있어 오챠코의 친구들은 독촉에 도가 텄기에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에 있어 아주 효과적이었고, 결국 그녀는 기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 혹시...! 그때 그 작은 늑대인간?"
마침내 기억이 난 오챠코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분명 8살때 쯤, 자신 또래의 작은 늑대 소년을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사냥꾼에게 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건지 붉은 목줄을 차고 그것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소년. 아픈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목줄을 빼내려고 쓴 날카로운 손톱에 목 근처의 피부는 다 찢어져 피가 굳어 있었다. 당시의 오챠코는 그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가와 다 찢어진 목줄을 풀어 주고, 경계하던 소년을 진정시키고는 약초로 목 근처를 치료해 주었다. 소년의 금발 머리칼은 지저분해져 있었지만 보기 싫지 않았고, 눈에는 경계심이 뚜렷했지만 두려움 따위는 없이 붉게 빛났다. 그를 다 치료해주고 나서 오챠코는 잠시 그를 보며 환하게 웃고는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이름이 뭐야? 나는 우라라카 오챠코라고 해!"
"...바쿠고 카츠키."
"멋진 이름이네! 앞으로 다치지 말고 잘 지내야 해, 바쿠고 군!"
그 말을 끝으로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오챠코였다. 사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많이 돌아다녔기에 이런 경험이 적었던 것이 아니었고, 그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그러니 오챠코도 그녀의 이름을 줄곧 되뇌일 바쿠고의 존재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어떡하지, 이제야 기억이 났는데...!"
벌써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 찾아가도 되는 것일까, 아직 있기는 한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오챠코는 그를 만났던 테라스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테라스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지만, 벽에 기대 잠시 잠을 청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쿠고가 서 있었다. 그것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 깨워서 자신이 기억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잠을 자고 있는 그를 내버려 둘지 고민했다. 그리고는 깨우기에도 미안함이 들어 그만 들어가보려고 하기 전 아마도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하려고 했던 말을 괜히 혼자서 중얼거렸다.
"너 그때 그 애구나. 바쿠고 카츠키, 맞지. 더 빨리 알아봤어야 했는데 미안해. 이렇게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 기억해줘서, 그리고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응, 고마워."
"이제서야 기억하네."
그렇지... 라고 말을 이으려던 오챠코는 그가 깨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만 놀라서 얼음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으며 한쪽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의 품에 안긴 모양새가 된 오챠코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고, 바쿠고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전했다.
"우라라카 오챠코,
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고,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 서로의 눈에 비쳤다. 사랑. 오챠코와 바쿠고의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이었다.